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지 말로리 (문단 편집) == 논란 == 1933년 퍼시 윈 해리스(1903~1979)가 이끌던 영국 에베레스트 등정대는 8,250m쯤 올라가서 피켈이 하나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 피켈은 바로 앤드루 어빈의 것이었다. 해리스 등정대도 결국 등정에 실패했지만, 이들이 발견한 이 피켈 때문에 의문이 생긴다. 이 피켈은 '''말로리의 것일까? 아니면 어빈의 것일까?'''가 논란이 되었다. 이 논란은 이후 피켈에 새겨져있던 모노그램과 동일한 모노그램이 어빈이 평소에 사용하던 단장에서 확인되면서 어빈의 피켈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말로리와 어빈은 당시 소머벨의 카메라(kodak vest pocket autographic special)를 빌려 갔으므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올라갔다면 반드시 사진을 찍었을 테고 이게 발견된다면 말로리와 어빈이 세계 최초로 정상에 올라갔을 것임이 증명될 거라는 이야기가 있다. 우선 두 사람의 마지막 목격자였던 오델은 이 둘은 틀림없이 등정했으며 내려오던 길에 사고를 당해 죽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위에 나오듯이 오델은 1987년 만 97살까지 살면서 1924년의 등정대원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는데[* 등정대는 아닌 사람까지 포함하면 일행 사진을 찍던 사진 담당 존 바티스트 노엘(John Baptist L. Noel,1890~1989)이 99살까지 살았기에 여기 일원 가운데 가장 장수했다.] 죽을 때까지 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1953년]] [[4월 29일]], 비로소 영국원정대의 [[에드먼드 힐러리]](Edmund Hillary, 1919~2008)가 대원자격으로 등반한 최초의 셰르파인인 [[텐징 노르가이]](Tenzing Norgay, 1914~1986)의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사진을 남기고 무사히 내려오면서 다시 한번 이들이 과연 최초 등정자가 맞는지, 아니면 말로리와 어빈이 먼저 올랐는지가 호사가들의 화제거리가 된다. 영국인의 자존심이 뉴질랜드인과 세르파의 등정을 인정 못해서 벌어지는 논란이라고도 하나, 이는 귀를 기울일 가치가 없는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로버트 스콧]]과 같은 선례가 있다 보니 이런 편견이 생길 수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당시 힐러리와 노르가이의 등정은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과 맞물려 '일개 섬나라로 몰락한 영국'이 아닌 '여전한 대영제국'의 승리라는 컨셉을 위해 처음부터 어느 정도 영국 정부와 원정대 간의 조율 하에서 이루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